“어른이 되면 우린 좀 더 성숙할 수 있을까”

▲ 수옥을 위해 한없이 헌신했던 어린 시절 범실의 순정(사진=네이버 영화). © 팝콘뉴스


(팝콘뉴스=최한민 기자)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어린 시절 첫사랑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 바쁜 일상을 핑계로 외면하고 있었던 기억의 세포들이 불현듯 하나하나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라디오 사연의 목소리와 함께 1991년 그때의 추억으로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 화면으로 돌아가 이어지는 영화 ‘순정’은 그 흔한 출생의 비밀이나 폭력 등 자극적인 요소를 배제한 순수 청정 로맨스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가면서 많이 퇴색됐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 순정이 있었다.

▲ 수옥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던 친구들(사진=영화 캡처). © 팝콘뉴스


전라남도 고흥의 외딴 섬마을 다섯 친구 수옥, 범실, 길자, 개덕, 산돌의 때 묻지 않은 우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에는 담대하고 솔직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명 ‘고흥 오 총사’로 불리는 다섯 아이들은 몸이 불편한 한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헌신하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며 실천한다.

선천적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친구들의 도움 없이는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쉽게 갈 수가 없는 수옥을 위해 친구들은 아련히 보이는 섬 계도에 가고픈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배를 훔쳐 오기도 하고, 노래자랑 2등 상품인 카메라가 갖고 싶다는 얘기에 리어카로 무대가 있는 학교까지 땀이 나도록 함께 뛰어준다.

다섯 친구 가운데 범실은 수옥을 남몰래 짝사랑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몰래 숨어서 지켜보곤 했다.

다리가 불편한 수옥이 품고 있는 하나의 꿈은 라디오 DJ였는데, 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DJ 연습을 하면 자신의 몸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행복해 했다.

수옥은 범실이 사다 준 가수 아하(A-Ha)의 카세트 테이프에서 ‘Take On Me’를 늘어질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수옥은 끝내 라디오 DJ라는 작은 소망을 이루지 못했고, 그의 못다한 꿈을 이어가는 범실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사연을 통해 목소리를 세상에 알린다.

영화는 왜 그때 수옥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려 왔는지, 왜 친구들이 함께 듣게 됐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지만, 모두 같은 추억과 그리움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연출한 이은희 감독도 “현재의 그들과 과거의 그들 간에 감정적인 호흡의 균형을 중시했다”며 어른이 된 친구들이 수옥을 생각하는 태도를 화면에 담아냈다.

특히 그를 짝사랑했던 범실의 마음의 감정 폭은 영화의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수옥이를 위해, 그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범실은 23년 후 라디오에서 ‘정수옥’ 이름 세 글자만 보고도 눈물을 쏟았다.

영화 ‘순정’의 특이한 점은 현재와 과거를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가 이어져,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는 이에게 벅차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관객은 마음속에 간직했던 추억의 보물상자가 하나씩 열리며 영화와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