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문화재-<2>백인제 가옥

근대사 담긴 대형 한옥 상류층 문화 볼 수 있어

김효선 기자 | 입력 : 2019/01/16 [09:20]

(팝콘뉴스=김효선ㆍ이지은 기자) 안녕하세요 우리 곁의 문화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영화 암살에서 강인국의 집으로 나왔던 백인제 가옥에 나와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에는 어떤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는지 지금 보러 가시죠.

 

이 한옥은 1977년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13년 일제 강점기 당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북촌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 대지 위에 전통방식과 일본 양식을 접목해 지은 근대 한옥입니다.

 

부근 한옥 12채를 합친 넓은 대지에 새로운 목재로 소개됐던 압록강 흑송(黑松)을 재료로 지은 최고급 한옥이었습니다.

 

한상룡은 이 가옥을 1935년 개성 출신의 언론인 최선익에게 넘겼고, 최선익은 이곳에서 1935년부터 1944년까지 거주했습니다.

 

1944년에는 백병원 설립자이자 당시 외과수술의 대가였던 백인제의 소유하게 됐는데요. 한옥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특히 서울역사박물관은 2015년 4월, 백인제 가옥을 역사 가옥 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하기 위해 개장 공사에 착수했고 그해 11월 18일부터 일반 시민들에게 전면 개관하였습니다.

 

또한 백인제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다른 한옥과 달리 둘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랑채는 일본식 장마루와 2층까지 건축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안채의 부엌 위에도 작은 다락방이 있고 붉은 벽돌과 유리창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박물관을 개방하면서 바깥주인(사랑방), 안주인(안방), 할머니, 아들 내외(건넌방) 가옥에 거주했던 가족구성원에 따라 각 방별로 전시 콘셉트를 정해 소품 150여 건을 전시했습니다.

 

또 마지막 거주자인 백인제 박사의 관련된 사진자료와 의학 자료, 골동품 수집 취미 등을 반영해 전시품 30여 종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고종 제위 시절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건립하고 당시 친일 세력의 연회지로 자주 사용되어 서울시 공관 후보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과거 친일파의 건축물이란 이유로 서울시 공간 후보지에서 제외되었던 백인제 가옥.

 

하지만 근대 시대를 보여주는 소중한 우리나라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김효선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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