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문화재-<1>홍지문 및 탕춘대성

한성의 군사 요충지와 군량 창고로 운용

김효선 기자 | 입력 : 2019/01/08 [18:43]

(팝콘뉴스=김효선ㆍ이지은기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숨겨져 있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일상으로 불러들이는 시간, 오늘은 홍지문 및 탕춘대성입니다.

 

서울의 북쪽에 있다 하여 한북문으로 불리기도 했던 홍지문은 북한산성의 한 축입니다.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1976년 6월 23일 서울시의 유형 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며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과 서대문구 홍은동에 걸쳐있는 홍지문은 청나라로부터 수도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1715년 숙종 재위 시절 때 건축되었습니다.

 

홍지문의 입구를 살펴보면 문 모양이 무지개 모양이며 양쪽 성벽인 육축면에 우진각 지붕 모양을한 당층 문루가 있고 문루 좌우에는 협문을 내고 전돌로 여장을 둘렀습니다.

 

또한 문의 앞위에는 홍예 모양의 쇠붙이 장식을 씌운 문을 마련하여 성내에 오를수 있도록 계단을 두었습니다.


한편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입니다.

 

명칭을 탕춘대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세검정이 위치에서 동문으로 약 100m 정도 되는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어 유래되었습니다.

 

한성의 서쪽이 있다 하여 서성이었으며 삼국시대부터 한산주로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속에 서울이 함락되어 고초를 겪어 수도 방위를 하기 위해 숙종 재위 30년 만에 축조하게 되었습니다.

 

4km의 탕춘대성은 북한산성으로 시작해 40일간 성의 반을 축성하고 다음 해 2월부터 또다시 40후에 완성되었습니다.

 

탕춘대성의 내부는 연무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탕춘대 터에 군량창고로 사용되는 총융청과 군영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공부도 많이 되는 홍지문과 탕춘대성 주변을 지나다닐 때 역사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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