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관능의 시대 1980‘s

국내 에로영화 전성기로 남아

김영도 기자 | 입력 : 2018/09/20 [10:10]

▲ 80년대 에로영화의 금자탑을 쌓은 애마부인 시리즈 애마부인3편은 김부선 씨가 주연을 맡았다(사진=다음영화).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영도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불륜녀를 자처하고 있는 영화배우 김부선 씨가 한때 스크린을 주름잡던 애마부인 시리즈의 히어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영화계에 종사하거나 영화팬 아니면 중장년층 외에는 없을 것 같다. 

 

또 최근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꽃보다 할배’에서 강한 인상을 보여준 백일섭 씨도 당대의 유명 에로 배우들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남성들의 부러움을 샀던 장본인이라는 것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80~90년대 극장가를 후끈 달궜던 장미희, 이보희, 조민수 등 여배우들도 TV와 스크린을 통해 복귀하면서 내공 있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팬심을 사로잡고 있다.

 


관능의 시대 80's


▲ 1981년도에 국내 개봉한 '개인교수'와 '차타레 부인의 사랑'(사진=다음영화).     © 팝콘뉴스


1981년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개인교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로망을 안겨주었고, ‘차타레 부인의 사랑’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필름 가위질이 삼엄했던 박정희 시대와 달리 파격적인 소재와 관능적인 미학이 스크린을 채울 수 있는 시대가 새롭게 열린 것이다.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적 불신을 돌리기 위한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 기조로 하이틴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던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바야흐로 관능의 시대가 열리면서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을 계산한 저예산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여배우의 노출 수위가 영화 흥행의 기준점이 됐으며,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외적인 상품적 가치가 캐스팅의 주요 기준이 됐다.

 

특히 도심의 개봉관들보다 지역에 소재한 재개봉관들이 적게는 5백 원의 입장료로 2편~3편의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게 운영하면서 에로 영화의 대중성을 확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전성기를 가져왔다.

 

지역에 소재한 극장들의 시설이 대부분 낡고 관리가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개봉관에서 밀려 재개봉관으로 온 영화 필름 상태도 좋지 않아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다가도 이따금씩 필름이 끊겨지면서 상영이 10여 분씩 중단되는 소동이 빈번했다.

 

또 상영관 안에서 흡연이 허용되던 시기에는 스크린 위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흔한 모습이었고, 극장마다 매점이 있어 매점 물건들을 직접 상영관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오징어와 땅콩, 음료수를 판매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었던 도원극장은 2차 재개봉관으로 동시상영을 했었다(사진=다음카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http://cafe.daum.net/distorted).     © 팝콘뉴스

 


 에로영화 전성시대  


한국영화 최장 에로영화 시리즈의 금자탑을 쌓은 영화는 단연코 애마부인 시리즈이다.

 

▲ 안소영 씨는 '애마부인' 주연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고,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정윤희 씨는 청순한 외모에 섹시한 이미지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사진=다음영화)     © 팝콘뉴스

 

1982년 정인엽 감독, 안소영 주연의 애마부인이 스크린에 걸리고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1995년까지 총 11편의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애마부인 시리즈가 11편으로 종지부를 찍는가 싶더니 이후 2016년 김미연 감독이 ‘애마부인 2016’을 새롭게 내놓으며 십여 년 만에 애마부인을 강제 부활시켰다.

 

애마부인의 열풍을 일으켰던 안소영 씨는 김수형 감독의 산딸기에 출연하면서 명불허전의 에로 스타로서 입지를 굳혔고, 이후에도 산딸기 시리즈는 6편까지 제작되는 기록을 남겼지만 국내 에로영화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보다 앞서 1981년작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국내 에로 영화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정진우 감독작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 출연한 정윤희 씨와 이대근 씨     ©팝콘뉴스

 

▲ 이장호 감독작 '어우동' 주연을 맡은 이보희 씨     © 팝콘뉴스

 

이어 이장호 감독은 1984년 안성기, 이보희 주연의 ‘무릎과 무릎사이’와 1985년 ‘어우동’ 등을 탄생시켰고, 에로 영화 대부분이 작품성보다 여성의 노출을 상품화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조명하는 것이 당시의 흐름이었다.

 

▲ 이장호 감독작 '무릎과 무릎사이'(1984)와 '어우동'(1985)     © 팝콘뉴스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등 화제작 히트제조기 배창호 감독도 1982년 안성기, 장미희 주연의 ‘적도의 꽃’이라는 히트작을 제작해 당대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 국민배우 안성기 씨와 장미희 씨가 열연한 배창호 감독작 '적도의 꽃'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사진=다음영화).     © 팝콘뉴스

 

이 영화는 최인호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당시 생소하기만 했던 관음증이라는 주인공의 성도착증을 사랑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스크린에 담아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올드 영화팬들에게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역사는 흐르는 강물처럼


▲ 웬만한 동네에 비디오 렌탈숍들이 서너 곳 있어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사진=인터넷 갈무리).     ©팝콘뉴스

 

이후 영화산업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자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변화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관객이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집에서도 편히 볼 수 있는 비디오 시대가 시작되면서 영화 산업의 양적인 쇠퇴기를 가져왔다.

 

그나마 1차 개봉관은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지역에 소재했던 2, 3차 개봉관들에게는 개봉된 영화가 비디오물과 동시에 유통되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며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운명을 맞았다.

 

반면 에로영화 산업의 주체도 종전의 영화제작사가 아닌 저예산 중심의 프로덕션 방식으로 제작되면서 비디오 시장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요인이 됐다.

 

애마부인의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젖소부인 바람났네’, ‘만두 부인 속터졌네’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저예산 에로 비디오물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디오 렌탈숍에서 대여 인기 순위 비디오물을 빌려 돌려보면 꼭 특정 부분에서 테이프가 씹혀 있거나 화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반복 재생으로 인해 테이프가 손상되는 흔한 현상이었다.

 

요즘 같이 동네 편의점들처럼 비디오 렌탈숍이 서너 곳 몰려 있어 가격 경쟁을 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영상물 유통이 파일전송 방식으로 바뀌며 비디오 렌탈숍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경험은 기억 한편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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