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일까, 정자? 난자? 수정란?

▲ 편슬기 기자 ©편슬기 기자

(팝콘뉴스=편슬기 기자)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포함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보건복지부가 태아를 지우는 행위를 양심에 위반하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과거를 살아온 세대들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며 머리채를 쥘 노릇이다.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도 생명이며 낙태 행위는살인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또 임산부를 발로 차 폭행하고 태아를 유산시킨 경우 두 사람을 동시에 폭행한 것이고 그 중 한 사람은 생명을 잃었으므로 살인죄에 해당된다고 본다.

실제2013년 4월 한 30대 남성이 층간소음 문제로 인해 위층에 살고 있는 임신부와 싸우다 그녀의 배를 발로 차고 우산으로 머리를 때려 끝내는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키고 말았다.

그는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고 상해 혐의로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하게 되는데 그쳤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순간부터 숭고한 생명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들, 그렇다면 정부는 수정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주민등록번호 부여와 각종 의료보험의 혜택을 제공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4대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지 묻는다.

아니면 임산부가 태아를 출산할 때까지 들어가는 모든 비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상대방 남성에게 양육비 지급의 의무를 따지고 임산부가 지하철을 탈 때 두 명분의 요금을 지불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체제나 규범 어디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는 태아를 생명이라 주장하고 낙태를 살인이라, 비도덕적 의료행위라 규정하는 이들에게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갖고 있는 자기 결정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먼저 존중하기를 바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존엄성은 존중해주면서 정작 임신의 주체가 되는 여성의 존엄성은 왜 무시당하는가에 정부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결정에 따르면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이를 집도한 의사는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되는데 해당 여성이 처녀 수태를 했을 리는 없으니 임신에 책임이 있는 상대방 남성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무책임한 남성들은간단한 몇 가지 방법들로 어렵지 않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에 분노한 여성들은 낙태죄 폐지와 아이의 아버지가 미혼모에게 양육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케 하는 히트앤런(Hit and run)방지법 을 요구하는 시위를 개최하고 있으며 낙태죄 폐지 시위의 경우 벌써 16차를 맞이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NO 자궁, NO 의견’ 슬로건으로 남성들이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멋대로 휘두르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임신한, 임신을 할 주체인 ‘자신’이 존엄성을 가진 생명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여성들이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닌,개인의 삶과 파트너나 가족과의 관계, 사회경제적 여건에 대한 고려 등 출산 결정 과정에서 겪는 복합적 고민 끝에 결정하는 것이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행위는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

현재 OECD 가입 30개 국가 중 23개국에서 ‘사회적ㆍ경제적 적응 사유’로 낙태수술을 허용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라는 여성들의 외침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고 의사와 환자 모두를 처벌한다는 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며 역행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5백보 양보해 정부가 낙태죄 폐지에 물러날 수 없다면 적어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을 한 책임을 묻고 동일한 처벌을 받게끔 법 제도를 규정해야하며 특정성별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없도록 관련 규정을 더욱 촘촘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테이블 위에 마주 앉아 동등한 위치에서 ‘낙태죄 폐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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