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사전 기획한 강경희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

▲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성평등 언어사전을 기획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경희 대표(사진=팝콘뉴스 박수인). © 박수인 기자




(팝콘뉴스=박수인 기자)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성평등주간(7월1일~7일)을 맞아 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를 시민과 함께 개선하는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5월 30일부터 6월 11일까지 열흘 남짓 진행된 시민 참여 캠페인에 시민들은 총 608건의의견을 제안했다.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는 것 ▲ 학교명 앞에 ‘여자’를 넣는 것 ▲ 여성의 대명사를 ‘그녀’로 표현하는 것 ▲ 처음 한다는 표현으로 ‘처녀’를 쓰는 등의 성차별적 언어 습관과 ▲미혼 ▲자궁 ▲몰래카메라 등의 성차별적 단어 등이 포함됐다.

성평등 언어사전을 기획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경희 대표를 만나 취지를 들으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불붙고 있는 여성운동에 관해 물었다.


성평등 언어사전을 만든 배경은


올해 정치권과 연예계의 커다란 화두는 ‘미투’였다.

용기 있는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에 불이 붙었고 그동안 끙끙 앓고만 있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강경희 대표는 2016년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불특정한 여성을 칼로 살해한 사건을 꼽았다.

강 대표는 “이후 많은 여성이 자신의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길거리 말하기’에서 ‘여기 있는 여성 중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경험이 없었다고 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시, 혹은 당연하진 않지만 숨겨야 하고, 참아내야 하는 역사를 살아온 여성들이 드디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놀라고 슬프고 화나던 사람들이 ‘나도’라는 자기 고백,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로 번졌다. 작년에 페미니즘 도서가 화제가 되면서 이 사전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촛불혁명이라는 경험이 시민 스스로 우리의 힘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재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말들이나 농담에 대해서도 남성들이 주춤하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은 것도 큰 변화다.

그러다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부터 고쳐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시민의 생각을 묻고 확인해보자는 취지로 캠페인이 시작됐다.

캠페인에 생각보다 커다란 호응이 있었고 6백여 건의 시민 제안이 모였다.

강 대표는 “그 중엔 같은 단어를 지적하는 것들이 많았다. 평소에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생각했던 단어였을 것”이라며 “여기자, 여의사, 여류작가, 여검사 등 왜 여성의 직업에 ‘여’자를 붙이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홍보팀에서는 “우리는 여 씨가 아닙니다”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만들기도 했다.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린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컸는데, 특히 아들 ‘자(子)’ 자를 쓴 ‘자궁’을 세포를 말할 때 쓰는 ‘포(胞)’ 자를 써 ‘포궁’이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는 악플이 쏟아졌다.

이러한 악플에 대한 강 대표의 반응은 담담했다.

“언제나 그런 반응은 있는 거니깐요. 우리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데 모두가 동의하겠어요. 반응이 있는 것은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 언어 습관 개선을 위한 다음 과제는


한 방송사에서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중앙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방영을 하면서, 여성에게 출생의 모든 짐을 지우는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신에 이제부터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부에서도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강 대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민 제안 단어 중에서 받아들이기 부담이 없고 편한 것들 그리고 의미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바꿔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차별 단어 교체를 서울시에 요청한 상태이고, 시에서도 몇 가지 단어는 고쳐서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대체 단어를 찾는 일이다.

엄마가 끄는 차라는 의미의 ‘유모차’를 아이가 타는 차인 ‘유아차’로 바꾸자는 의견에는 많은 이가 동의했다.

하지만 대체 단어가 왠지 어색한 것도 있었는데 ‘외가’와 ‘친가’를 각각 ‘엄마네’, ‘아빠네’로 고치자는 제안이었다.

강 대표는 “재미는 있지만,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들을 국어학자 등 전문가들과 논의해 적절한 단어를 찾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슈가 되는 과격한여성 운동에 대한 생각은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시민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10여 명이 윗옷을 벗은 채 시위를 벌였다.

상의를 입지 않은 여성 회원이 단체 공식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자, 페이스북측에서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강제로 삭제한 데 대한 항의였다.

논란이 되자 페이스북측은 ‘불꽃페미액션’측에 사과 후 해당 게시물을 원상 복구했지만, 이 일을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은 이어져다.

최근 화제가 되는 과격한 여성운동에 대한 강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거꾸로 질문하고 싶다. 왜 여성들이 겨우 웃통 하나 벗은 것뿐인데, 거기에 왜 이렇게 많이 주목할까. 사실 남성들은 술 마시고 길거리에서 훌렁훌렁 웃통을 잘 벗고 다니지 않나. 보기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라며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를 주목해야 하는데, 그 행위 자체를 놓고 유난히 주목하는 이유는 관습적 사고에서 봤을 때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모두가 웃통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주목할 수 있는 성숙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덧붙여 “극렬한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이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와 크기와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역할은


‘남성’도 힘든데 왜 ‘여성’만을 위한 재단이 있어야 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여성계에서는 더 이상 여성가족부가 없어도 되는 사회가 오는 게 우리의 최종목표라는 이야기를 한다”며 “여성과 남성이 다함께 평등하게 모든 기회를 똑같이 부여받고 모든 역할을 동등하게 나눌 수 있다면 여성가족부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출산, 육아, 교육 심지어 노부모의 돌봄까지도 여성들이 그 짐을 지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최근 들어 남성도 함께 이러한 과제를 나누려는 모습이 있지만, 육아휴직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듯 아직은 미미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가 보다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여성ㆍ가족 관련 정책들을 만들어 내도록 근거를 제공하고 연구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실제로 실험적으로 사업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는 ‘두 탱크(Do Tank)’로서 기능을 해가고 있다.

강 대표는 많은 이들이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수면 아래에 있는 미투가 더 많이 나와 주고 더 많은 사람이 위드유를 해서 그야말로 성평등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언젠가는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경희 대표는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건물 외벽에는 성차별 언어사전 기획 취지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는 대형 게임판이 부착돼 있다(사진=팝콘뉴스 박수인). © 박수인 기자





‘남아선호사상’은 없었던 대신, ‘맏이절대사상’을 가지고 계셨던 부모님 덕분에 맏이였던 강경희 대표는 성장 과정 내 가정에서는 성차별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보통의 여성이 경험했을 법한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그랬던 그가 ‘여성’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16년 전이다.

모금 전문가였던 그가 선배의 추천으로 2002년 ‘한국여성재단’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밀레니엄을 맞아 열악한 여성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모금 운동을 하는 재단을 설립했는데, 모금과 배분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여성운동을 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던 강 대표는 처음엔 주저했지만, 어디서나 일당백으로 온 열정을 다해 일하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모습에 존경심을 느꼈고 그렇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남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선봉에 서 있는 강 대표다.

그가 꿈꾸는 ‘남성도 여성도 웃을 수 있는 평등사회’가 하루빨리 우리 앞에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