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 아닌 '인간 한계'에 관한 소설

(팝콘뉴스=이강우 기자)'노인과 바다'는 50대 중반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풀리처상(1953년)과 노벨문학상(1954년)을 연이어 안긴 헤밍웨이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힌다.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이정서 역, 2018년 4월 © (주)새움출판사

이 간결하고 압축적인 소설을 20세기 문학의 백미로 꼽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어떤 소설로 알고 있을까?


평론가들은, 혹은 언론은 "늙은 어부인 한 '노인'이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 내고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인 양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같은 본문 속 문구를 그럴 듯하게 인용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노인과 바다'는 오히려 자연에게 패배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와중에 오히려 잡아 죽여야 할 적이라 해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데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헤밍웨이는 시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세계인이 감동하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원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역자의 의중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의역이 아니라, 원래 작가가 쓴 문장의 서술 구조를 반드시 지켜 주는 번역이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도 허투루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우리의 오랜 인식은 그것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다른 언어라 해도, 서술 체계만 다를 뿐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혹자는 번역이니까 다르게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도 하지만, 사실 그 말은 성실하지 못한 번역가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작가 의도가 하나이듯, 원래 의미도 하나인 것이다.


다양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쓰는 작가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원래 문장이 있는데 번역이니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말은 그래서 사실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새롭게 출간된 '노인과 바다'른 통해 독자들은 자연에 대한 겸허, 인간의 한계, 그리고 적에 대한 배려와 존중과 같은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역자의 원문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을 통해 '노인과 바다'가 함축하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메시지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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