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생명권 vs 여성 자기결정권 놓고 정부 두 목소리


(팝콘뉴스=윤혜주 기자) 낙태죄를 둘러싸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각기 다른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6년 6개월 만에 다시 한 번 공개변론을 거쳐 낙태죄 폐지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낙태죄 위헌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형법 269조 1항에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270조 1항에는 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 제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는 임신 24주 이내인 사람의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과 친인척 간 임신 등 5가지 낙태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낙태가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법체계 속에서 지난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열어 “태아는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받아야 하므로 임신 후 몇 주가 경과했는지를 기준해 보호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다”라고 낙태죄 합헌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3만 명의 동의를 받아 조국 민정수석이 “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내놓는 등 헌재의 합헌 결론 이후로도 낙태죄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지난 2013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총 69회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지난해 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따라서 헌재는 지난 1월 11일 낙태 처벌 형법 조항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문을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에 보냈으며 24일 대심판정에서 공개 변론을 열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며 현행법을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

반면 여성가족부는 지난 3월 30일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해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의견을 공식화했으며 모자보건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낙태죄 합헌 여부에 대한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 책임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24일 공개 변론이 한창인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극명한 입장 차이가 나타났다.

1994년부터 태아와 여성 복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낙태반대운동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가 여성의 권리라는 주장은 태아가 독립적 인간 생명이라는 기본 전제를 무시한 처사”라며 낙태죄 합헌을 강렬히 주장했다.

하지만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모든 이들이 성적 권리와 삶의 권리, 임신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사회정의를 실현하라”며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가 낙태죄에 대한 이견을 보이며 정부에서도 두 목소리를 내고 여론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뚜렷하게 나뉘는 등 낙태죄를 둘러싸고 팽팽한 입장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당시 낙태죄 합헌 의견 재판관 4명과 위헌 4명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지만 위헌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 났으며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현재 모두 퇴임한 상태다.

또 낙태죄 위헌 여부를 판가름 내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총 9명의 재판관들 가운데 6명이 낙태죄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지난 2012년 합헌 결정과는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공개변론이 끝난 후 주심 재판관이 검토 내용을 요약 발표하면 나머지 재판관들이 각자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실시되는 ‘평의’를 거쳐 올 하반기에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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