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추사 김정희' 일대기 역사적 재평가

유홍준 교수,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문학적 재조명

이강우 기자 | 입력 : 2018/05/08 [15:01]

(팝콘뉴스=이강우 기자) 한국 인문서를 대표하는 독보적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방대한 자료와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추사 김정희 삶과 예술을 담은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를 펴냈다.

▲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흥준 저, 2018년4월 © (주)창비

 

그동안 우리 문화유산만큼이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한국 문화사의 거인 추사 김정희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다.

 

저자 유흥준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를 이끌었다.

 

영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석좌교수로 있으며, 명지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평론집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미술사 저술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론열전'(1~2), '완당평전'(1~3), '국보순례', '명작순례', '유흥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3), '석농화원'(공역)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탄생부터 만년까지, 주인공의 일대기를 좇는 전기 형식으로 구성됐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는 그간 파편적으로 이해되어 온 추사의 삶과 예술, 그리고 학문을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대갓집 귀공자로 태어나 동아시아 전체에 '완당 바람'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던 추사가 두 차례 유배와 아내의 죽음 등을 겪고 인간적, 예술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 역사소설처럼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추사 학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여느 학술서 못지않게 탄탄하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전기 형태로 썼다 하지만,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방점을 학술에서 문학으로 바꾸었을 뿐이며, 임어당의 '소동파 평전'처럼 전공자가 읽으면 학술이고, 일반 독자가 읽으면 문학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에 실린 280여 점의 도판은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이다.
 
'세한도' '불이선란' 등 기존의 대표작뿐 아니라 '침계' '대팽고회' '차호호공' 등 최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들과 그 제작 경위까지 상세히 실려 있어 도판만 따라 읽어도 추사 예술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추사체의 변천을 비롯한 추사 예술의 흐름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추사는 한국인으로서 드물게 자기 분야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국제적 위인이라 할 수 있다.


추사의 이러한 모습은 무엇보다도 그의 일대기에 잘 드러난다.


그가 청나라 학예인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쌓은 왕성한 교류, 당대 문인들과의 학문적•예술적 교감, 고비•고문을 찾아나서는 열정적인 답사, 스님들과의 폭넓은 교유, 제자를 아끼며 지도하는 모습, 10년간 두 차례의 귀양살이 끝에 인생관의 대반전을 이루며 종국에는 평범성의 가치로 회귀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삶의 기복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진실로 한국 문화사의 위인 중 위인이다.


추사를 중국을 사모한 모화주의자 또는 사대주의자로 보는 관점이 있지만, 청나라의 고증학적 학예를 따른 것은 모화사상이라기보다 그 나름의 근대화였고 세계화였다.


비유하자면 우리 근현대미술사에서 선전, 국전의 진부한 관학파 화풍이 화단을 지배하고 있을 때 서구 모더니즘을 도입하며 추상미술 운동을 일으킨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한류가 흘러가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가 200년 전에 그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세계를 무대로 학문과 예술을 전개해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족적 자랑을 느낀다.


이처럼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세계를 무대로 학문과 예술을 전개해 높은 성과와 인기를 얻은 추사의 삶은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를 통해  추사 김정희를 제대로 알게 되는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라는 추사의 얘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큰 가르침을 전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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