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어른인가?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팝콘뉴스=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2018년 4월 어느 날 아침 8시 40분, 나는 11살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아이를 키우며 자주 하는 행동은 바로 병원에 가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아이가 아플 때 ‘어느 의사에게내 아이의 진단을 맡길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임신이 기쁘십니까?


2008년 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나는 3.2kg의 예쁜 아기를 낳았다.

12시간의 산통과 제왕절개로 피로했는지 아기는 작고도 거대한 하품을 하며 학생이자 부모인 우리를 만났다.

아기를 처음 인지한 2007년 여름 나는 프라이부르크에 살면서 아이를 둘 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에게 병원을 추천 받았다.

언니의 추천으로 나는 예거 선생님께 예약을 잡았고, 병원에서 마주한 선생님은 나의 임신을 알리며 진지하게 물었다.

“임신이 기쁘십니까?”, “아이의 아빠가 아이의 임신에 대해 기뻐할까요?”

나와 아이의 몸 상태와 더불어 나와 내 남편의 임신에 대한 감정을 묻는 이 의사가 좋았고, 우리 부부는 만나면 만날수록 추천할 만한 좋은 의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의사는 나에게기분이 어떤지를 매번 물었다. 누군가내 기분을 챙겨 준다는 것은 매우 생소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의사는 학업 중이었던 나에게 “포기하지 말고 두 가지 모두 열심히 하라,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있다”와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이 병원은 언제나 사람이 붐볐고, 날이 갈수록 병원은 더욱 붐볐다.

둘째 아이 임신 중반에는 예거 선생님이 대학병원 부원장이 되셨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아이들에게 엽서 받는 의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소아과 의사를 찾아야 했다.

좋은 의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산부인과를 추천한 그 언니에게 다시 문의했지만 언니는 “대기시간이 길다”고 답했다.

‘길어 봐야 얼마나 길까’라는 생각에 예약을 했고, 우리는 대기실에서 기약 없이 기다렸다.

아픈 아이들과 어린아이들, 부모들이 뒤섞여 붐비는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멍하니 복도를 바라보다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병원 복도에 다니는 아이들 손에 슈트로마이어 선생님에게 주려고 쓴 엽서가 들려 있던 것이다.

아이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엽서는 의사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만난 슈트로마이어 의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완벽한 부모”라 칭하며 아이의 상태를 언제나 꼼꼼히 살폈다.

첫 진료에서 아이의 눈을 보시더니 안과에 조금 빨리 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아이가 있어 행복하냐”는 질문을 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질문’이었다.

슈트로마이어 의사는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도 한 번의 흐트러짐이 없이 놀라운 기억력을 보여줄 때면 우리부부는 자주 놀라야 했다.

어느 날 아이의 갑작스런 고열로 한밤중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소아과 슈트로마이어 의사를 만났다.

낯선 의사에게 우리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아이의 상태를 체크해 온 의사가 아이를 돌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슈트로마이어 의사는 “한 초등학생의 미래직업체험을 위해 한 달간 아이와 함께 진료를 보니 양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우리 아이의 건강과 지역 아이의 꿈을 돌봤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예거 선생님과 겹치는 순간이었다.

슈트로마이어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 아이를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시고는 나에게 아이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모든 환자들에게 그랬기에 진료시간이 길다고 불평하거나 대기시간이 길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이 환자는 매번 늘어만 갔다.


나는 좋은 어른인가?


한국에 돌아와 나는 수많은 소아과 의사를 만났다. 아이의 병원을 찾기 위해 주변의 모든 소아과를 다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주변에 소아과는 없었다.

왜 나는 존재하는 소아과를 없다고 말을 하며 계속 소아과를 그리도 찾아다닌 것일까?

요즈음 이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은 것 같다.

좋은 어른을 아이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

이 답이 나오자마자 나는 나에게 자문했다.

“나는 좋은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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