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담아

▲ 달팽이 프로젝트 팀원 (왼쪽부터) 이홍근 작가, 배완 디자이너, 김정재 사진작가(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윤혜주 기자)“달팽이가 이동할 때 점액이 나와 자취를 남기듯, 사람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취를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달팽이 프로젝트’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자서전을 만들고 있다.


‘달팽이’ 프로젝트, 그들은 누구인가?


달팽이 프로젝트 이홍근 작가는 “연극동아리 동기인 정재가 휴학 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모습에 늘 자극을 받아 이 친구와 꼭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다”며 달팽이 프로젝트 김정재 사진작가를 소개했다.

김정재 사진작가는 “당시 제 작품이라고 말할 만한 사진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 무엇을 해야 사진작가로서 자신감이 생길지 고민하다 노인분들께 영정 사진을 찍어드리는 일을 해 볼까 생각했다”며 고민 많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홍근 작가와 김정재 사진작가는 동아리 방에서 술을 마시며 서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주 공유했는데, 처음 이 작가가 제안한 활동은 엔딩노트 제작이었다.

엔딩노트는 노인이 인생 말기에 맞는 죽음에 대비해 자신의 희망을 적어 두는 노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서전을 제작하기로 했다.

달팽이 프로젝트 배완 디자이너는 “왜 진작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생 얘기에 대해 들으려 하지 않았을까”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어 자서전 제작에 동참했다고 한다.

배완 디자이너는 같은 뜻을 가진 이홍근 작가와 훈련소 동기로 만나 ▲사진 김정재 ▲디자인 배완 ▲글 이홍근을 팀원으로 달팽이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글과 사진, 일러스트 등 총 세 가지 분야 가운데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작업에 담당자 이름을 붙인 것일 뿐 기본적으로 인터뷰 준비와 실행, 후반 작업까지 세 명이 함께 모여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홍근 작가는 “자서전 작업은 기계처럼 각자 부품을 맡아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맞춤 제작하는 작업으로, 세 명 모두의 느낌이 중요하다”며 세 명 모두가 프로듀서라고 소개했다.


“인생에서 무엇인가 완성되는 시점은 오지 않습니다”


▲ 달팽이 프로젝트 팀(사진=팝콘뉴스).

배완 디자이너는 “자서전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인전과 동일시되면서, 결과적으로 이룬 것이 많은 사람만 자서전을 쓸 수 있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다”고 말한다.

달팽이 프로젝트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만들 수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코 평범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홍근 작가는 “자서전 제작이 아닌 자서전 프로젝트라 불러 달라"며 "평범한 인생도 과정 자체이며 누구나 특별한 인생이란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방점을 찍었다.

진학하는 대학의 순위로 평가 받는 고등학생, 입사한 회사 레벨로 평가 받는 대학생 등 사람들은 과정이 아닌 무언가의 결과로 인생을 평가 받으며 이직ㆍ승진처럼 평생 끝나지 않을 평가를 위해 매 순간 희생하다 죽는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자서전자체를 그들의 작업 가운데 일부분만 차지하는 결과물로 보며 인터뷰 과정을 통한 사람들의 소통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김정재 사진작가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는 꼭 그분 가족들을 초대한다"며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그들의 인식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모는 자식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식은 부모의 삶을 이해하게 돼 서로 공감하는 과정 속에서 두 세대 간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취준생은 남을 위한 글인 자소서를 많이 쓰는데, 자서전을 쓰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고, 훗날 결혼할 사람에게 보여주면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다"며 자서전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자서전이 완성되면 의뢰인에게 직접 전달하는데,의뢰인과 의뢰인 자녀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같이 공감한 후에야 작업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진정성’으로 빚은 작품들


▲ 달팽이 프로젝트 팀의 첫 번째 작품 '류재인 자서전'(왼쪽)과 두 번째 작품 '그루터기'(오른쪽)이다(사진=팝콘뉴스).

첫 작품이 나왔을 때 회식하자고 약속한 세 명은 근처 선술집에 모여 자신들이 만든 자서전과 마주했다.

김정재 사진작가는 “딱 보는데 감개무량했어요. 그렇게 빛나는 사진은 처음 봤습니다. 제 사진에 자서전 주인공의 삶이 깃들여지면서 반짝반짝 빛나더라구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홍근 작가는 “그날의 기분은 지금부터 한 시간 넘게 말할 수 있어요. 2년 전 정재랑 술 마시며 같이 작업하자고 했던 아이디어가 진짜로 구체화돼 내 앞에 있구나 하며 벅찼다”고 말했다.

첫 자서전 주인공은 류재인 할아버지다.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었던 류재인 할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이유로 북파공작원이 됐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다.

류재인 할아버지 인터뷰 후 그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인생이 자신들에게 깊은 의미로 새겨지는 마법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1020세대로서 6ㆍ25전쟁을 겪은 세대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고 한다.

두 번째 자서전 주인공은 30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견남ㆍ송은주 부부이다.

이홍근 작가는 김견남 씨의 건강 악화로 미술학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 뒤 매우 안타까워 미술학원이란 공간을 소재로 자서전을 제작해 보자고 부부에게 제안했다.

부부의 둘째 아들은 달팽이 프로젝트 팀이 진정성 있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 그들을 칭찬했다고 한다.

배완 디자이너는 “형이 사석에서 말하길, 젊은 애들이 스펙으로 쓰기 위해 시작한 활동인 줄 알았는데 인터뷰 내내 저희가 너무 재밌게 듣고 공감하니까 '이 아이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하는구나' 했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저희는 완벽한 삼류입니다”


▲ 달팽이 프로젝트 팀원 이홍근 작가(사진=팝콘뉴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의 작업은 녹취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인터뷰 당시 찍은 사진을 보정하며, 내용 가운데 일러스트로 만들 부분을 정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배완 디자이너는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때쯤이면 셋이 모여 자서전의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의논하는데, 셋 가운데 한 명이 먼저 아이디어를 던지면 나머지 둘은 신이 나서 생각을 더해 발전시킨다”고 말했다.

또 이홍근 작가는 “저희는 단 한 번도 상대방 의견에 대해 태클을 건 적이 없으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칭찬해주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삼류 작가가 자기 작품을 보면서 운다고. 저희는 완벽한 삼류입니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 모두 인터뷰 녹음을 들으면서 자서전 주인공의 감정이 이입돼 그때 당시가 생생하게 떠올라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무료로’, ‘고 퀄리티 자서전을’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누구나 특별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지길 바랄 뿐, 이윤 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작가와 사진작가, 디자이너로 구성된 세 명을 한 팀으로 만들어 자서전 제작 노하우를 공유해 또 다른 달팽이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자 한다.

이홍근 작가는 “저희의 노하우나 플랫폼을 오픈 소스로 공개해 자서전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하는 것이 목표"라며 "특히 저희와 같은 20대가 많이 참여해 그들의 부모님과 형제 등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서전을 선물해 주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달팽이 프로젝트 팀의 포부를 밝혔다.

달팽이 프로젝트 팀은 자체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서전 제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참고 자료를 제공할 뿐 달팽이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무료로 고 퀄리티 자서전을 만들어 준다는 것 자체가 달팽이 프로젝트의 홍보 전략이라는 것이다.

자서전 주인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진정성이 오고 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감동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다.

1인가족, 핵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 달팽이 프로젝트처럼 세대를 서로 이해하고공감하는 사회적 장치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세대 격차로 오는사회적 갈등의 간극은 더욱 좁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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