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공백을 메우려는 이들의 미스터리한 여정,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의 경계를 꿰뚫는 이야기의 힘!

(팝콘뉴스=이강우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선보인 본격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권 '현현하는 이데아', 2권 '전이하는 메타포') 한국어판이 이달 12일 출간됐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저, 2017년 7월 ⓒ(주)문학동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1987년 <노르웨이 숲>을 발료,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당시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 타임즈>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애프터 다크>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1Q84>가 출간되자마자 한일 양국의 서점가를 점령하며 또다시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한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작품 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현세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소설 속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렇듯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농축한 결과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소설가가 안팎의 문제에 맞서 싸워 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무국적 작가'로 불려온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고독한 여행, 구덩이와 벽 등의 폐쇄공간,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속 독자적인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오페라, 클래식, 재즈, 올드 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물의 심상을 대변하고, 주인공 '나'와 멘시키, 그리고 멘시키와 13세 소녀 마리에의 관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으로 꼽았으며 직접 번역까지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로도 읽힌다.

주인공의 기이한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에도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가 직접 인용되는데, 이 역시 하루키가 예전부터 즐겨 읽으며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작품이다.

작가 생활 초기에 그가 주로 썼던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온 것도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본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인상 깊게 전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한 곳에 잡아둘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몸속을 순서대로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지? 마음은 기억 속에 있어. 이미지를 먹으며 살아가는 거야."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일본 출판계에서도 전례가 없던 초판 부수와 책에서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언술되는 '난징학살사건'에 대한 일본 현지의 이슈가 우리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껏 고조되어 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이야기'에 굶주려 있던 독자 모두에게 무더위를 식히는 한 방법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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