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집단 사망 사태 조사 촉구…노동자 권리 강화 기대

(팝콘뉴스=손지윤 기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와 사측이 산재 보상과 관련해 수년간 대립각을 형성하고 현재까지 날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산재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산재 은폐 강력 처벌 필요”…근로환경 개선 의사 밝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에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며 사각지대에 가려진 근로자들의 권리를 강화시키고 외주화 방지법을 개정해 안전한 일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노동계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며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한 산재 보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그동안 삼성반도체, 하이닉스, 한국타이어, 엘지디스플레이 등 2000년대부터 유해물질을 다루는 직업군에서 원인 모를 급성 질병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산재 입증과 관련된 제도는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은 인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소량의 유해물질과 접촉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며 질병에 대한 원인을 근로자 탓으로 돌렸고, 노동계는 인간이 아닌 소모품 취급을 한다며 날을 세워 왔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산재에 대한 뚜렷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사이에 수많은 근로자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파면으로 물러나고 5월 장미대선이 치러지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산재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대선후보자들에게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산재 은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혀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집단사망 사태와 고무산업 종사자들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원인 규명과 피해자 치료 및 건강관리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현 제도의 개선을 강조했다.

더불어 “유해물질 사용에 따른 산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해물질의 인과관계 등 원인 규명을 통한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근로감독 지원을 강화하고 물질안전자료 공개의 투명성을 강화, 예방대책 마련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엄격한 유해물질관리 기준과 산재 처리를 위한 관련부처의 법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영업 비밀을 이유로 물질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지 않는다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할 수 없다”고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산업재해와 노동자 질병의 연관성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에 맞는 엄격한 유해물질 관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장에서 질병을 얻어도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물질 안전 보건자료 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유해물질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 근로자의 알권리 현실에선 꿈 같은 소리
대한민국의 근로자라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장 내 유해물질의 명칭, 유해성, 취급상의 주의사항 등을 알권리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작업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지만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지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하다 숨진 근로자가 약 108명에 이른다고 밝혀 사건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또 사측이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사전조치와 시행령을 강구하지 않았고, 근로자에게 열악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5월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한국타이어 대전, 금산 공장에서 뇌종양, 폐렴,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사망에 이른 노동자들이 13명에 달했지만, 산재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타이어가 취급하는 1급 발암물질 벤젠, 톨루엔, 자이렌이 직업적 질병과 연관이 있다고 판정된 판례가 4건에 달하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유해물질이 아닌 고열과 교대 근무로 인한 질병이라고 보고 있어 조사에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08년 발표한 역학조사에서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한국타이어 근로자들의 산재 신청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산재협의회 관계자는 “대전공장은 산재율이 1% 미만”이라며 “2008년 이후 질병사망자가 38명이 발생했지만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중대재해 수사를 하지 않고 사측은 유해물질의 상품명만 바꾸고 있다”고 관련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를 성토했다.

또 “7천 명이 넘는 직원 중 과반수가 3차 하청업체로 2차, 3차 하청업체 직원들이 하는 일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공장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에서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부당성을 고발했다.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된 근로자들이 원인도 모른 채 희귀병을 안고 살아가야 함에도 대부분의 직원이 3차 하청업체인 점을 악이용해, 2차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으로 오래전부터 만연해 온 대한민국 근로 구조의 문제점이다.

최근에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에 앞서 원청업체에 산업안전 책임을 부여해 유해 환경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다는 공약을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작업 환경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한국타이어 산재 사건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근로자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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