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뉴스=정미경 박사)

'독일 정치 경제 이야기'는 독일의 정치, 경제, 법률, 사회 등을 연구한 전문 인력들이 만든 독일정치경제연구소에서 우리의 현실과 접목해 사회적 공감대 확산과 발전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칼럼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팝콘뉴스>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편집자 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선산업 구조조정 문제와 그 성공적인 해법에 다시 이목이 집중된다.

최근 독일의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90년대까지 독일의 산업구조 조정정책은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경제정책 분야 중 하나였다.

70년대와 80년대 실시된 조선, 농업, 광업 분야 산업구조조정정책은 특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 조선산업의 경우 구조조정을 위해 지출된 보조금이 구조조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구조 유지를 위해 쓰여졌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핵심은 구조조정을 위한 보조금이 해당 기업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 또 그를 수행하기 위한 기업 스스로의 뼈를 깎는 노력을 전제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지급됐다.

또 구조유지정책적으로 실시된 농업과 광업에 대한 지원도 그 돈을 다른 산업정책을 위해 지출했더라면 투자와 고용효과가 그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대두됐다.

이렇게 독일이 구조조정정책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한때 1,200억 마르크를 넘었다. 1970년엔 독일 국내총생산의 5.5%, 1980년에는 6% 가까이, 1989년에는 최소 6%로 1,200억 마르크 이상이 산업구조조정 지원금으로 지출된 것.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후 독일은 산업구조조정정책의 기본 원칙을 명확히 했다.

즉 산업구조 변화로 발생하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인 어려움에 국가가 나서되 국가는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다.

또한 산업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그때그때 뒷북을 치듯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산업구조에 대한 계획을 갖고 체계적으로 조정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사업을 지원할 기준지표를 정했다.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서부터 환영할 만한 사업까지 지표를 정하고 환영할 만한 프로젝트를 계획한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기본 원칙에 따라 △산업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환영할 만한 구조조정계획을 스스로 수립해야 한다. 구조조정정책은 해당 기업에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 정부 개입의 목적은 근로자의 생계를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보호하는 것이다. △ 사양산업의 경우 근로자와 지역경제가 급격한 변화로 인해 타격을 받지 않도록 변화의 속도를 조정해 새로운 경쟁 조건에 근로자가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구조의 유지를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 정부의 지원수단은 조만간 그 필요가 없어져야 한다는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 원칙을 수립했다.

이런 원칙이 바로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근년 실시된 독일의 조선산업 구조조정정책에 적용됐다.

2009년 세계경제의 침체와 함께 독일 조선해운산업 또한 침체했다. 조선해운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주요 조선사들은 먼저 자구책을 마련했다.

회사채를 발행하고 선박 및 주식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독일의 대표적 해운사인 Hapag Lloyd사는 합병을 통해 세계 4위 컨테이너 해운사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했다.

중소 선박회사인 Lürssen사는 제조 선박의 다양화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을 폈다. Meyer조선소는 고급 유람선이라는 특수시장을 공략했다.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에서 '국가는 더 나은 기업이 아니다' 기업은 스스로 구조조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취한 이러한 '환영할 만한' 구조조정계획을 정부대출지급보증의 형태로 지원했다. 또 숙련기술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보조 하에 '직업훈련회사'를 설립했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된 근로자들이 훈련을 통해 기술력을 향상하고 재취업을 하도록 했다.

훈련기간 동안 정부와 기업은 근로자의 최저 생활을 보장했다. 나아가 정부, 금융기관, 사용자 단체, 기업은 전력을 다해 해운업의 물동량과 조선업의 수주를 늘려 조선해운산업의 위기를 극복했다.

이렇게 기업과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 원칙을 지켰고 독일의 조선산업은 위기 이전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다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한진해운에 기업회생절차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진해운이 전체 해운업과 근로자, 협력업체, 국가경제에 미칠 효과를 감안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회생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그 신속하고 공정한 회생절차에 정부와 기업이 지켜야 할 산업구조 조정정책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 빠른 결정에 근로자의 생활 보호와 기업 경쟁력 제고라는 성공적 산업구조 조정의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가?

산업구조 변화 과정에 근로자, 기술인력이 감당해야만 하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업은 노사가 공생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현실적인 구조조정계획을 수립했으며 정부는 이를 또 어떻게 성공으로 지원할지 결정했는가?

빠른 결정과 단호한 결정은 다르다. 지금 조선산업구조조정에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지 않는 빠른 결정보다 원칙을 지키는 단호한 결정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미경 소장(프랑크푸르크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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