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인 일상 소설] 탈피(脫皮) 4-3

나소리 기자 | 입력 : 2016/03/22 [16:38]
(팝콘뉴스=나소리 기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소설가의 꿈을 꾸던 중 신춘문예 당선을 마음에 두며 끄적여봤던 소설이다. 한 번의 시도 끝에 부끄럽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워 덮어뒀지만 문득 주머니 속에서 손 끝에 잡힌 쪽지처럼 꺼내 돌려보고 싶다. <편집자주>

 

                                                               8

저녁 늦은 시간, 희원이 회사 건물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습관처럼 벤치 쪽을 흘깃 보다 이내 시선을 거둔다. 머리를 좌우로 꺾자 목에서 ‘두둑’하는 소리가 난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크게 켜는데 육교 위에서 그녀가 육교 바닥에 앉아 그를 보고 있다. 

‘회사 건물에서 나올 때부터 지켜봤나?’ 희원은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벤치 쪽을 살펴본 것을 들켰을까 괜히 부끄러워진다. 집을 가려면 신호를 건너야 하는데 평소 계단이 싫어 육교로 길을 건너지 않았던 희원이 웬일인지 육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육교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희원을 그녀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희원이 천천히 그녀가 있는 육교 반대편을 향해 걷는다. 그러다 희원은  이전에 자신이 놓고 간 맥주와 허쉬 초콜릿이 문득 궁금하다. 물어볼까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희원은 입을 떼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지나친다. 그 찰나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넨다.

“그 맥주요, 놓고 가셔서…….” 희원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린다. 
“드세요!” 희원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실수였지 싶어 횡설수설한다. 우스운 그의 모습에 애린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순간 신호등에 붉은 불이 들어오며 세상은 잠시 고요해진다. 편안하고도 어색한 적막에 희원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 가던 길을 가려는데 애린이 왜 자꾸 자신을 훔쳐보느냐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 말에 희원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희원이 당황한 빛을 내비치며 집 방향으로 몸을 트는데 애린이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소라게고, 사람이고….” 애린의 눈이 차가 달리는 도로에 고정돼있다. 그 말을 들은 희원이 멈칫하다 이내 몸을 돌려 육교를 빠져나간다. 애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끈질기게 응시한다.

 

                                                              9

희원은 그 후에도 애린을 자주 마주치고는 했다. 둘은 서로의 눈이 부딪힐 때마다 눈인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희원은 가끔 늦은 저녁 육교에서의 그 날을 떠올리곤 했다. 왜 도망치듯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만 했었는지 자책도 했다. 매번 혼자 앉아 하는 생각이 궁금했고 아무도 없는 육교 위 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이유도 알고 싶었다. 마지막 그녀가 했던 말도 몇 번이나 곱씹어봤다. 

‘소라게?’

 

                                                              10

방 안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누워있던 희원이 두꺼운 겉옷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후 문을 열고 나선다. 차가운 가을 밤바람이 희원의 두 귓불을 세게 스친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 거리는 한산하다. 수명을 다 한 낙엽만이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 따라 공중에서 빙그르르 회전한다. 

희원은 집에서 나와 도로가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간다. 무표정한 30대 초반의 직원이 기계처럼 인사말을 내뱉는다. 주류 코너로 가 맥주 세 캔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스낵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이내 허쉬 초콜릿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편의점에서 나온 희원은 빠르게 집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다 순간 멈칫한다. 뭔가 고민하듯 입 안 쪽 살을 씹던 희원이 방향을 틀어 천천히 걷는다. 잠시 후 노량진역 앞에 위치한 육교 앞에 희원이 서서 한참을 두리번댄다. 이윽고 육교 위에 앉아있던 애린과 눈이 마주친다. 둘은 한참을 서로 그렇게 바라본다. 둘의 눈맞춤은 애린의 눈인사로 끝이 난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희원은 한참을 생각하다 천천히 육교계단을 오른다. 몇 개의 계단을 올랐을까. 희원의 눈앞에 애린이 있다. 

“어디 가세요?” 애린이 검은 비닐봉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희원에게 묻는다.
“아, 예. 주말에 잠도 안 오고 해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드실래요?” 희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다 애린에게 맥주 한 캔을 내민다.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희원은 등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한 줄기 식은땀을 느끼며 애린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네. 주세요.” 애린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애린이 희원 손에서 맥주 한 캔을 받아가자 희원이 어색하게 애린 옆에 앉는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육교 위 맨바닥에 앉아 있다.

 

                                                               11                                                         

29살이고 얼마 전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수험생 박애린. 하지만 3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얼마 전 시험의 최종합격자 명단에 본인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다. 
31살의 평범한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김희원.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지방에서 따로 살고 계신다.

서로의 간단한 호구조사가 끝나자 둘은 또 한참 침묵을 지킨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희원이다. 
“아, 그 때 소라게 어쩌구 하신 건 무슨 뜻이에요?” 희원이 짐짓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애린이 목젖을 드러내며 크게 웃는다. 그런 애린을 희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웃음을 멈춘 애린이 방금 전 웃음과는 대조적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대답한다.
“제가 소라게를 키우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만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대상이 누구든 다가간다는 건 참 어렵네요.” 말을 마친 애린이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희원은 더 묻고 싶었으나 애린의 입이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한참 후 애린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소라게가 달팽이처럼 집을 가지고 태어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자신의 몸에 맞는 쉘을 찾아 입구 부분을 갉기도 하고 이 집 저 집 옮기며 맞는 쉘에 들어가는 거래요. 근데 저는 제 몸 숨길 쉘 하나 없네요. 이렇게 쉘만 찾다가는 딱딱한 몸통도 닳아 없어지겠죠?” 애린이 말을 마치고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희원은 아무 말 못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희원의 눈에 쉘 없는 초라한 소라게가 보인다.

 

                                                               12

「잘 들어가셨어요?」
애린은 어젯밤 희원에게 온 문자를 한참 바라본다. 낯선 이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아 애린은 부끄럽기만 하다. 애린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어제 먹었던 허쉬 초콜릿과 맥주, 차가운 가을바람, 한적하던 도로, 그 위의 희원. 모든 게 꿈같다. 사실 애린은 자신을 자주 흘깃거리는 희원이 궁금했다. 가끔 벤치 옆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희원이 생각났다.

‘화단 옆 건물이 직장이었구나.’ 자신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 단정히 입고 있던 검은 양복, 어리바리한 말투, 애린은 희원을 상상하며 미처 듣지 못했던 희원 이야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그러다 문득 최종합격자 명단에 없던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애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때 애린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액정을 보니 희원의 이름이 떠있다. 잠시 고민하던 애린은 눈물을 닦으며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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