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뉴스=정호원 박사)

'독일 정치 경제 이야기'는 독일의 정치, 경제, 법률, 사회 등을 연구한 전문 인력들이 만든 독일정치경제연구소에서 우리의 현실과 접목해 사회적 공감대 확산과 발전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칼럼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팝콘뉴스>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편집자 주>

우리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영구평화론>에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영구 평화'를 가능케 할 제반 요건들에 관해 설파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여섯 개의 예비조항과 세 개의 결정적 조항, 그리고 두 개의 보충조항 및 두 개의 부록 등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오늘 우리의 흥미를 끄는 부분은 바로 첫 번째 보충조항으로서, 그 제목은 '영구 평화'의 보장에 관해서이다.

무엇보다 보충조항에 앞서 등장하는 세 가지 결정적 조항의 내용이 곧 자연의 이치 내지 섭리와도 부합하는 내용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제시하는 세 가지 결정적 조항이 준수되어지는 한, '영구 평화'는 다름 아닌 자연에 의해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거꾸로 말해서 세 가지 결정적 조항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자연의 이치 내지 섭리를 거스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세 가지 확정적 조항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 번째 조항은 각국이 공화적 정치질서를 갖추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핵심 내용인 즉,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공통의 입법에 예외 없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부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예외 없이 공통된 법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때 비로소 공화적 정치질서는 완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어 두 번째 조항은 국제법이 자유로운 국가들 간의 연방주의에 근거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지상의 모든 국가를 자신의 지배 내지 통제 하에 두려는 세계국가 내지 보편 왕국은 결코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

이어 대외적 독립권과 대내적 최고권을 의미하는 주권을 오롯이 향유하는 자유로운 국가들 사이의 느슨한 연합만이 영구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바람직한 국제관계의 전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조항은 세계 시민법이 보편적인 우호 내지 환대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누구도 타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적대적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바, 모든 인간은 지구 표면을 함께 공유하는 존재로서 방문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그와 같은 세 가지 조항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인간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만큼은 법의 지배 하에 들지 않는 예외이기를 바라기 마련인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 보다 구체적으로 개별 국가의 원수는 - 할 수만 있다면 자신보다 약한 이웃국가를 하나하나 병합하거나 자신의 지배 하에 둠으로써 궁극적으로 유일무이한 세계국가가 되고자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지혜롭게도 자연은 언어와 종교의 차이를 둠으로써 – 만일 칸트가 마르크스 이후 20세기를 경험했더라면 언어와 종교 외에 이데올로기를 추가했으리라 - 민족과 민족이 혹은 국가와 국가가 인위적으로 합쳐지는 것을 미연에 차단했다.

물론 자연이 이에 그친다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로 인해 서로 분리된 각 민족 내지 국가는 결국 철저히 고립됨으로써 국가 간 느슨한 연합은 고사하고 우호 내지 환대에 근거한 세계시민 자격으로서의 타국 방문은 좀처럼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그와 같은 고립이 궁극의 악인 전쟁 – 혹은 힘의 우위에 입각한 타 민족 내지 국가의 병합 - 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바로 여기에 자연의 또 다른 지혜가 숨어있다고 얘기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민족과 민족을 내지는 국가와 국가를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통해 서로 분리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하기 마련인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또 하나의 기제를 이용해 그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업정신(Handelsgeist)이다. 이른바 상거래 내지 교역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익 실현이라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을 두는 상거래와 교역을 허용한다는 것은 전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국가나 민족 간의 고립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인 동시에 위대한 자연의 이치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거꾸로 그와 같은 상거래 내지 교역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전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국가나 민족 간의 고립을 초래하는 것인 바, 칸트에 따르면 그러한 시도는 무엇보다 자연의 섭리와 배치되는 일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 경협은 좀처럼 합일점을 찾기 어려운 정치 영역에서의 협력에 앞서 합일점을 찾기가 보다 용이한 경제 부문에서의 협력을 우선 추구함으로써 통일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른바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의 결정체이다.

언뜻 어렵게 들릴 수 있는 이 말도 결국은 이익 실현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마련인 상거래 내지 교역을 양국 간에 허용함으로써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북한의 고립을 미연에 방지하고 훗날의 정치적 통합을 위한 주춧돌을 쌓는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칸트가 얘기하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와도 부합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얼마 전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조만간 한국 정부에 방북을 신청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록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이라도 옛 현인의 지혜에 기대서일지언정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결정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칼럼니스트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호원 위원(베를린 자유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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