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뉴스=홍선기 박사)

'독일 정치 경제 이야기'는 독일의 정치, 경제, 법률, 사회 등을 연구한 전문 인력들이 만든 독일정치경제연구소에서 우리의 현실과 접목해 사회적 공감대 확산과 발전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칼럼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팝콘뉴스>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편집자 주>

독일을 의미하는 Deutschland라는 단어는 Deutsche(독일어)와 Land(나라)가 합해져서 나온 명칭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일은 처음부터 민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사용되던 독일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다.

다시 말해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점차 서로 하나가 되면서 형성된 국가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발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다른 민족에게도 굳이 배타적일 필요도 없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은 국가라는 관념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말할 나위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 국가 개념이 형성된 근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이전부터 많은 난민들이 몰려들어 살게 됐다.

특히 민족 개념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이주민들에게 특별히 배타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독일어만 잘 구사하면 어렵지 않게 큰 불편 없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착할 국가가 없어서 온 유럽을 떠돌던 유대인들도 독일로 몰려들었고 점차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학계와 경제를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를 지켜보던 히틀러가 있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다.

최근에 유럽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시리아 난민 문제다.

유럽은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인 이유로 아프리카나 중동 등지에서 이민자, 난민, 불법 체류자 문제를 꾸준히 겪어서 골치 아파했지만 주로 경제적 목적의 난민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그 취급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선별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아 난민 사태의 경우 그야말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탈출이기에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은 평소 인권을 강조하던 유럽에서도 쉽지 않은 문제다.

더구나 그 규모면에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할 정도의 대규모였기에 유럽 국가들은 선뜻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엔 난민 기구가 집계한 시리아 난민은 총인구 2,300만 중에서 1,100여 명이고 이중에서 무려 400만 명이 국외 난민인데 그중 상당수가 유럽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될 바도 아니긴 하다.

그러던 와중 터키 해변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3살배기 아일란의 엎드려 있는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한 입장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전면적인 난민 수용 의지를 보이고 유럽 국가들에게 쿼터제를 주장하면서 일약 난민들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실제로 수많은 독일인들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지나 온 난민들을 태운 열차가 독일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가 '환영합니다!(Willkommen!)'라는 피켓을 들고 이들을 환영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독일 뮌헨 중앙역에는 난민을 위한 이동 화장실과 간이 의료시설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역사 주변에는 각종 음식과 구호품 상자가 높게 쌓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인 가톨릭 사제가 이교도인 이슬람 난민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고 격려했고, 집에서 만들어 온 과자를 나눠주는 여성, 아이들에게 장남감과 풍선을 나눠주는 사람들, 옷가지들을 나눠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행정적으로도 연방정부의 심사를 거쳐 난민수용시설로 들어간 난민들은 매월 현금으로 143유로에서 210유로(대략 2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를 지원받고 거주와 의료 지원을 보장받게 됐다.

심지어 대학에 지원하고자 하는 난민들을 위해 무려 1억 유로(대략 1,250억 원)의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슈피겔지는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서 연방교육부장관(Bundesbildungsministerin)인 요한나 방카(Johanna Wanka)는 "공부를 원하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독일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밝히면서 난민들의 대학 학업 지원을 분명히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메르켈의 이러한 결단은 분명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당장 독일 내에서는 그녀가 속한 보수적인 기민당(CDU)과 자매 정당인 기사당(CSU)이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직도 독일 곳곳에서는 네오나치들이 난민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있고,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난민 수용소 방화를 기도하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난민 수용에 유연한 사민당(SPD)을 비롯한 좌파 정치인들은 폭탄 테러 위협에 처하기도 했고 실제로 현 쾰른 시장인 헨리에테 레커가 후보 시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자 쾰른의 한 시장에서 '외국인 혐오' 성향의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당하기도 한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다른 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인 80만 명부터 무려 100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로 올해 몰려들 것이라는 전망은 메르켈의 난민 수용정책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난민 관련 예산이 무려 약 100억 유로(13조2,8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보도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 규모가 지나치게 많다는 견해가 과반을 점하면서 난민 수용에 대한 독일인들의 태도가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이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던 메르켈 총리 지지도의 가파른 하락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사민당 소속의 부총리인 가브리엘은 "난민 문제가 독일 통일 이후 최대 난제"라고 그 심각성을 받아들였고 메르켈 총리 역시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EU에 더 큰 도전"이라고 언급하며 난민 문제를 분담하기 위한 의도로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도 난민 수용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독일의 난민 정책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파리에서 끔찍한 동시다발 연쇄 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대다수 난민과 같은 무슬림이었고 무엇보다 난민으로 위장했다는 점이다.

현지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그리스에서 난민으로 등록한 뒤 프랑스로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리 테러와 난민 유입 사태 간의 연관성이 제기되자마자, 바이에른 주정부의 마르쿠스 죄더 재무장관은 언론에서 "지금처럼 난민 통제가 안 되고 불법적으로 유입되는 일이 지속될 순 없다"면서 "파리 테러는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최악의 테러로 인해 지금까지 메르켈 총리가 주도해 온 난민 정책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게 될 전망이다. 그녀가 주장했던 유럽 국가들의 난민 수용 쿼터제도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유럽의 난민 정책에 있어서 극우파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또한 반 무슬림 정서, 다시 말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가 온 유럽에 확산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난민들에 대한 보복 테러나 혐오 범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우주의자들의 준동을 가라앉히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테러와 관련된 보복 테러가 끊임없는 악순환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유럽의 극우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는 서로에 대한 반감을 동력으로 삼는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극우 세력이 유럽 내의 무고한 무슬림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면 결과적으로 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세력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번 파리 테러를 단순 보복 차원의 대응으로 나간다면 이는 문제의 근본 해결과 거리가 멀 뿐더러 자칫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9ㆍ11 테러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은 철저히 증오를 앞세워 대테러 전쟁을 일으켜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에게 어느 정도의 충격은 가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미국 내에서의 테러 위협은 증가했다는 평가를 상기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난민 수용 정책과 관련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메르켈은 이러한 상황에서 극단으로 향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파리 테러범에 대한 대대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테러 희생자와 친척들에게 빚을 졌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안보에 책임이 있으며 전쟁과 테러리즘에서 도망친 죄 없는 난민들에 대해서도 빚을 지고 있다"며 반테러와 이민자 보호를 기치로 내세웠다.

여기에는 좌도 우도 없다. 그저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을 뿐이었다.

각각 정치적으로 성향이 다른 기민당(CDU)의 메르켈 총리와 사민당(SPD)의 가브리엘 부총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보통의 이슬람을 구분하며 종교 혐오 등의 극우 발호를 경계하며 이번 테러로 이민자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고통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여기에 바로 내가 메르켈 총리를 지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극우주의로 빠질 개연성이 높은 상황과 반 이슬람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단 광기에 빠지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독일 기본법 제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으며 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명시하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4,000만 명 이상이 죽은 2차 대전의 집단광기로부터 도출된 이 조문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녀가 국가 지도자의 입장에서 난민들에 대한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독일 내에 있는 엄청난 수의 난민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섬뜩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차 대전 이전에 가장 많은 난민들의 안식처였던 독일에서 히틀러라는 지도자의 광기는 6백만 명이라는 유대인들의 희생을 낳았듯이 위기 시의 국가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다행히도 메르켈 총리는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했다.

"난민이야말로 파리 테러를 저지른 자들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이며 난민은 테러범이 아니다"라는 그녀의 외침은 그저 감동적이기만 하다.


칼럼니스트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홍선기 위원(프라이부르크대 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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