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뉴스=한경화 자유기고가)

2015년 대한민국은 인문 독서 열풍으로 가득 차 있다, 몇년 전부터 '인문학적 사고'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엔 인문학을 탐내지 않는 분야가 없다. 교육, 경제, 정치, 문화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인문학과 함께 자기 분야나 내용을 소개하는 책, 광고, 방송 등이 쏟아져 나오며 우리에게 인문학을 가까이 해야 풍성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무엇일까? 학교에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교사 인문학 동아리', '학생 인문학 책쓰기', '교사 독서토론 동아리', '학생 독서토론 동아리' 등을 결성해 열심히 인문학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저 기존의 독서토론동아리 활동에 이름만 인문학을 붙이고 있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삶에 유의미하다면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유행을 하고 그것이 우리들의 삶 속에 깊고 넓게 접근해 올 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내용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인문학이 뭐예요?'라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야'라고 가볍게 답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묻는다. '그럼 소설이나 수필과 뭐가 달라요?' 나와 함께 인문학 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가 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책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함께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자꾸 갖게 해 준다. 그러면서 인문학의 뜻도 이야기해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우리가 인문학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서점에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인문학 관련 책들에서도, TV의 인문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EBS 인문학 특강 등을 통해서도 우리가 마음만 갖는다면 인문학을 접하고 친해질 수 있는 통로는 참 많다.

그러나 처음 인문학을 접하는 사람은 인문학이 어렵고 낯선 것이 사실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인문학에 대한 무료 강의를 해주는 곳의 문을 두드려도 좋고,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독서토론회를 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그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인문(人文)의 문(文)은 무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인문(人文)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무늬를 말하는 게 아닐까'라고 뜻을 풀어본다. 인문학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우리 삶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속에서 우리 삶의 원리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문학에 대해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고 우리의 삶을 탐구한다. 인문학은 삶의 원리를 밝히는 학문이며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학, 법률, 역사, 예술, 철학, 비평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따라서 융합을 중시하고 문과 이과 통합을 추구하며 종합적 사고력을 강조하는 시대에 인문학은 꼭 옆에 두고 어루만지고 끌어안으며 그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 영화 '역린'의 한 장면 ⓒ인터넷 커뮤니티
생활 속의 인문학 공부…영화 읽어보기

여기서 잠시 2014년 개봉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 '역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을 그리고 있다. 약 38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긴 '역린'의 인기 비결 중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이유로 한 명장면을 든다.

관객들에게 가장 공감을 얻은 역린 속 명장면을 꼽으라 했더니 배우나 소속사가 기대했던 정조 역을 맡은 현빈의 탄탄한 복근과 등 근육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었다.

편전에서 경연을 통해 신하들과 실질적인 학문에 대해 자신의 뜻을 역설하는 정조가 나태한 신하들에게 중용 스물세 번째 장을 외울 수 있는지 시험했고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때 상책이 나지막이 다음 구절을 읊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를 담은 중용 23장 구절은 시대적 공감과 함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널리 전파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중용 23장 구절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을까?

그것은 우리가 몇백 년 전 씌여진 고전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그 당시 사람들의 삶과 많이 다르다. 물론 당시의 생각이나 문화 중 지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인문고전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그 속에 시대를 초월해 흐르는 인간 삶의 보편성과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린을 본 관객들은 중용 23장의 구절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보편적 진리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바로 고전 속에 담겨 있는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고 찾아 우리의 삶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인문 고전 책들을 읽다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선현들이 살면서 깨달은 진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진리를 거름 삼아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것이다.

인문학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갖고 살 수 있게 하려면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통찰력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선인들이 현명하게 살아내고 슬기롭게 극복한 삶의 지혜를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인문학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삶을 의미 있게 살게 해 주어야 한다.

얼마 전 '생각 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인문학의 시작은 질문이다'란 문구가 책을 붙잡게 했고, 읽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은 생각이 사라진 시대이니 우리들이 잃어버린 질문을 되찾자는 내용이 마음속을 파고들었고, 책을 읽는 동안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저자들이 모여 펼치는 지적 사유의 장을 만나 참 행복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자신의 인생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을 만나는 것'이며 독자들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용감하게 던진다. 이들이 던진 많은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과 이웃,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로까지 생각이 확장됨을 느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한층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통한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해 주어 이 혼돈의 시대에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아이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 속에서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키울 시간이 없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지식을 섭취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 주어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인문학을 통해 갖게 해 주고 싶다는 강한 책임감이 폭풍처럼 가슴에 일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그것은 독서를 통해 바쁜 일상과 넘치는 정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중요한 가치들, 그동안 눈감고 있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 천안동성중 국어교사 한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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